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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법(200524)히브리...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법
히브리서 4장 12,13절 말씀
우리가 성경을 읽는다고 할 때 단순히 책을 읽는다고 말하지 않는다.
소설이나 만화를 보는 것같이 말하지 않고 우리는 성경을 읽으며 ‘하나님의 말씀을 읽는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다.’는 표현을 사용한다.
다시 말해 우리는 성경을 읽으면서 지금 하나님께서 나에게 말씀을 하신다는 전제하에 또 하나님이 내게 주시는 메시지를 받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고 성경을 읽는다.

믿음의 성도들은 고민이 있을 때 성경에서 그 답을 찾고자 한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성경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는가를 묻는 성도들도 있다.
우리는 어떻게 성경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있는가?
또 그 성경 속에 나오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우리의 삶에 적용하며 살고 있는가?

사람들이 설교말씀을 듣거나 QT를 할 때 대개는 오늘 나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싶다는 열망으로 듣는다.
그 열망이 워낙 크기 때문에 그 열망 속에서 성경을 읽게 되고, 또 그것이 성경읽기의 유일한 목적이 된다.
그러다보니 문제는 성경을 읽으며 우리는 나에게 맞는 하나님의 말씀을 찾으려 애를 쓰게 된다.
결과적으로 우리는 말씀을 읽으며 하나님과의 소통을 이루기보다는 오늘 나에게 가장 어울릴 것 같은 아이디어를 찾아내는 연습을 하게 된다.
이러한 모습은 진정한 의미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읽는 법이 아니다.

나도 예전을 기억해보면 어떤 때는 5분 만에 말씀에 대한 묵상이 끝날 때가 있다.
성경 말씀을 읽어보다 기가 막힌 낱말 하나를 발견한다.
그러면 그 낱말이 모든 것을 다 장악하게 된다.
그 낱말을 묵상하게 된다.

본문에서 앞뒤 상황이 어떤지, 성경 속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또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하는지는 결코 중요하지 않다
결국 그 하나의 낱말이 나에게 가장 중요하다.
그래서 그 낱말이 계속 곱씹어 생각하면서 그 말씀이 하나님께서 나에게 말씀하셨다고 생각하기 시작한 것이다.

정말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일까?
나는 어쩌면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려 했던 것이 아니라, 내가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놀았던 것처럼 보인다.

한 여학생이 목사님을 찾아왔다.
이 학생은 남자친구를 사귀고 싶은데 ‘이런 남자가 있는데 사귀는 것이 좋을까요?’ 답을 얻기 위해 목사님을 찾아온 것이다.
그것은 이 여학생에게 이미 사귀고 싶은 남자가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이 친구랑 사귀고 싶은데 신앙상 몇 가지 마음에 걸리는 부분이 있는 것 같다.
그래서 목사님을 찾아온 것이다.

이 여학생의 마음속에 그냥 사귀자니 마음에 걸리고 헤어지자니 아깝기에, 목사님을 찾아온 것이다.
그래서 결국 목사님이 ‘믿음이 없어도 네가 선교사가 되어 구원 받게 하면 되지!’, 라든지 ‘부족한 것은 네가 채워주면 되.’라는 이야기를 듣게 되면, 돌아가면서 생각하기를 ‘하나님께서 정해주셨다.’라는 답을 찾고 싶었던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신이 원하는 말씀이 나올 때까지 상담도 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찾아다닌다.

옛날 조크 중에 한 젊은이가 콩나물 시루같은 버스를 탔는데 맨 뒷좌석에 겨우 자리에 앉았는데 한쪽에는 할머니가 앉고 한쪽에는 아주 아름다운 젊은 여자가 앉았다.
당시 버스 운전사가 얼마나 거칠게 운전을 하는지 움직일 때마다 자신의 몸이 기울어져 한번은 할머니, 한번은 아가씨 품에 안겨지는 것이다.
믿음을 가지고 있었던 이 청년은 하나님께 기도하기 시작했다.
할머니의 품에 안겼을 때 기도했다.
‘주여 시험에 들지 말게 하옵소서.’
아가씨 품에 안겼을 때 이렇게 기도했다.
‘주여 뜻대로 하옵소서.’

사람들은 자신의 문제 앞에 자기 마음에 딱 맞는 말씀이 나오면 이렇게 말한다.
‘하나님이 말씀해 주신 것 같아요.’
심하게 표현하면 마치 성경말씀으로 점괘를 보는 것 같은 모습이다.

사실 성경으로 점괘를 보려면 우리는 어떤 식으로도 볼 수 있다.
거기에 성경은 아주 짧은 것이 아니기에 내가 원하는 점괘를 언제든지 찾아낼 수 있는 단점이 있다.
물론 그것이 장점일 수도 있다.

많은 성도들이 내가 원하는 메시지를 골라서 내 마음대로 써먹고 산다.
마치 내 생각을 성경에 투영해서 그것을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금박을 입혀 다시 꺼내어 자신을 보호하려는 것이다.
우리는 그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려 할 때가 많다.

그러면 성경을 어떻게 읽어야 하고 또 어떻게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을까?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하자.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듣기 위해서는 먼저 말씀을 잘 이해해야 한다.
우리가 성경을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성경말씀에 대한 강박관념이 없어져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읽으면서 ‘적용강박증’이 있다.
마치 오늘의 운세를 알아내려는 듯 매의 눈으로 성경을 바라본다.
그리고 성경을 읽다가 어떤 단어나 문장을 찾아내려 애를 쓴다.
이런 강박증을 없애고 버려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성경을 왜 읽을까?
예를 들어 우리가 부모님과 만나 지금 대화를 한다고 하자.
부모님과 관계를 가지고 대화를 한다고 하는 것은 어떤 모습인가?
부모와 이야기하는 중에 부모님의 이야기 중에 한 단어를 발견하고 그것만 묵상하고 있으면 그것이 대화일까?
부모가 우리에게 이야기할 때 그것이 어떤 이야기이든지 전체를 보고 잘 이해하여야 한다.
그러려면 한단어가 아니라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부모의 마음을 살펴보아야 하지 않겠는가?

부모를 이해하려면 우리는 부모님의 이야기를 잘 들어야 한다.
하루만 잘 들어서는 안 된다.
꾸준히 부모님과 살면서 틈만 나면 만나서 이야기하고, 혹은 수다를 떨고, 어떤 때에는 진지하게 이야기도 하고, 이렇게 수없는 나날들의 만남을 통해 우리는 부모님을 이해하게 된다.
이런 이해를 바탕으로 우리는 일상의 삶을 살아가는데 서로 물어보지 않아도 부모님의 생각과 뜻을 알게 된다.

우리가 성경을 읽을 때도 마찬가지다.
매일 성경을 대하고 매일 성경의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
물론 그 가운데 한 단어에 집중하고 은혜 받을 때도 있겠지만, 사실 성경을 읽으며 더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 창조하실 때 하나님의 마음, 인간이 죄에 빠졌을 때 하나님의 생각, 다윗, 솔로몬의 이야기를 통해서 들려주시는 하나님의 긍휼과 사랑의 마음을 알아가는 것이다.
성경을 읽는 다는 것은 곧 하나님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고, 하나님의 마음을 알아가는 것이고, 하나님의 생각을 찾아가는 것이다.

물론 어떤 문제들은 부모에게 물어봐야 할 때도 있다.
예를 들어 어릴 때는 엄마랑 길을 가다가 건널목 앞에 서면 엄마를 보고 물어봐야 한다.
‘건너도 되나요.’
왜냐하면 아직 어리기 때문이다.
길을 건널 때 3살짜리 아이가 건너야 할지 말아야 할지 엄마에게 물어보는 것이 당연하다.
엄마가 ‘건너자!’라고 말할 때 엄마의 손을 잡고 건너야 한다.
그런데 나이가 서른 살이 되었는데도 불구하고, 건널목에서 길을 건널 때 엄마에게 ‘건널까요 말까요’ 묻는 것은 정말 이상한 것이다.
왜냐하면 그 정도 나이가 되면 충분히 판단할 나이가 되었기 때문이다.

때로 아주 성경을 많이 읽고 신앙생활 오래 한 사람들도 문제 앞에 불안을 느끼며 살고 있다.
그래서 성경책을 펼치고 이렇게 묻는다.
‘엄마, 이 길 건너도 되?’, ‘멈춰야 해?’
잘못 선택했다가 자신의 인생이 망쳐질까 두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여전히 성경을 읽으며 수없이 되묻고 또 되물으며 살아간다.
그리고 그것이 마치 성숙한 신앙생활이라고 착각하고 산다.

만일 그렇게 매일 물어야 길을 걸을 수 있는 사람이라면 이미 그는 성숙한 사람이 아니다.
그러나 만일 우리가 지금까지 꾸준히 성경의 말씀들을 읽으며 엄마랑 대화하듯 이렇게 저렇게 이야기를 나누었던 사람들이라면 이미 그는 하나님의 뜻에 대하여 상당히 많은 것들을 알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웬만한 상황에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이런거지!’라고 느낄 수 있는 것이다.
충분히 판단이 가능한 성숙한 그리스도인이면서 많은 사람들이 세 살짜리 어린아이의 흉내를 내고 있는 것이다.

히브리서 5장에는 이렇게 살아가는 자들에게 말씀한다.
이는 젖을 먹는 자마다 어린 아이니 의의 말씀을 경험하지 못한 자요 단단한 음식은 장성한 자의 것이니 그들은 지각을 사용함으로 연단을 받아 선악을 분별하는 자들이니라(히5:13,14)
젖을 먹는 자 같은 신앙의 어린아이가 있다는 것이다.
이들은 의의 말씀을 경험하지 못한 자들이라고 말한다.
만일 교회에 다닌지 얼마 되지 않아 하나님의 말씀에 대하여 읽어보지도 들어보지도 못했던 이들이라면 마땅히 성경을 가까이 하며 하나님의 마음을 알아가기에 힘써야 하며, 또 주위의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이나 뜻을 물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평생을 이렇게 살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단단한 음식은 장성한 자들의 것이라고 말하며 ‘신앙의 성숙한 자’로서 살아갈 것을 권한다.
성숙한 자는 이미 ‘의의 말씀’을 경험한 자다.
성숙한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보고 묵상하는 자들로 그들의 지각을 사용하여 자연스럽게 어떻게 그 말씀을 적용함이 마땅한가를 알게 되고, 또 그것을 실천함으로 연단 받아 결국 선악을 분별하며 살아가는 성숙한 신앙인으로 살 수 있다는 것이다.
결국 성숙한사람은 신앙의 사리분별하며 살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모습은 사람이 자라는 모습과 같다.
어릴 때는 분별을 하지 못하다가 성경말씀을 읽으면서 우리가 하나님을 좀 더 잘 알아가게 되고 복음을 받아들이게 되고 그러다가 웬만하며 모든 일을 분간하고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기는 것이다.
성경말씀을 통해, 혹은 설교말씀을 들으며 우리는 이 같은 분별력들이 생겨나고 그것을 통해 우리는 성숙한 신앙의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물론 때로는 말씀앞에 하나님의 뜻을 물어보아야 할 경우도 생길 것이다.
이런 특별한 경우가 있겠지만 대부분의 삶의 문제는 일반적으로 오랜 대화가 쌓여서 충분히 그리스도인의 성숙함을 가지고 우리의 삶을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엄마랑 하루 이틀 이야기를 안했다고 엄마에 대하여 모르는 것이 아니다.
마치 그런 것처럼 우리가 때로 말씀을 읽지 못하는 경우가 생기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하나님을 모르는 것도 아니고 그분의 뜻을 알지 못하는 것이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적용 강박증’을 버리고 좀 더 여유 있게 생각하며 말씀 앞에 서기를 바란다.
그렇게 생각하면 우리가 성경을 읽을 때에도 마치 어머니 앞에 앉아서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것 같은 편안함으로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게 될 것이다.

나를 알아가는 과정
또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읽는 것은 나를 알아가는 과정이다.
사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읽는 것은 마치 기도와 비슷하다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내 속에 있는 생각을 끄집어 내는 과정’이라고 말할 수 있다.

말씀과 마주하며 성경을 읽다보면 이런 생각이 든다.
성경의 말씀 하나 하나를 관찰하다보면 ‘내가 누구인가?’ 나 자신을 보게 된다.

관찰이라는 것이 무엇인가?
내 질문을 던져서 어떤 답을 찾아내는 것 아닌가?
내 질문을 던진다는 것은 곧 나를 찾는 것이다.
내가 어떤 질문을 던지고 있는가를 보면 우리는 나를 알게 된다.
내가 어떤 동일한 질문을 계속 던지고 있다면, 결국 그런 모습이 자신이고, 결국 자기에 대한 깨달음으로 이어지게 된다.
결국 하나님의 말씀을 읽으며 수 없는 질문을 던지다보면 말씀 안에서 자기의 속을 들여다 보게 되는 것이다.

성경을 읽는 것은 자기를 정직하게 들여다보는 과정이라고 말할 수 있다.
결국 우리 속에 있는 욕심과 죄의 문제를 좀 더 곰곰이 생각하게 한다.
말씀을 읽으며 우리는 자신이 소위 순진무구한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고, 죄인이라 고백하게 된다.

사실 우리는 우리 자신 안에 있는 욕망이 무엇인지 잘 모른다.
우리는 늘 감추며 살고, 늘 스스로 내가 멋있는 사람이라고 자신을 포장하며 살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대하며 이런 하나의 전재를 가져야 한다.
‘나는 내 마음속에 나름대로 욕망과 죄가 있다.’
그런데 이 욕망과 죄를 하나님의 말씀과 대화하면서 깨닫게 되는 것이다.
‘내가 이런 존재구나.’
결국 하나님의 말씀을 읽으면서 우리는 나 자신이 어떤 존재인가를 깨닫게 되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우리는 히브리서 4장에서 말씀하시는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이 살아있음을 알게 된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지으신 것이 하나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우리의 결산을 받으실 이의 눈 앞에 만물이 벌거벗은 것 같이 드러나느니라(히4:12,13)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있다.
그리고 아주 강력한 힘이 있다.
좌우에 날이 선 양날 검보다 더 예리하다.
여기서 검은 해부용 칼을 말한다.
그 칼로 우리의 혼과 영을 갈라내고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한다.
그리고 우리의 마음에 품은 생각과 의도를 낱낱이 밝혀낸다.
말씀의 기능은 바로 그런 것이다.

우리 모습을 있는 그대로 드러나게 함으로 우리를 좀 더 진솔하게 하나님 앞에 서게 만들어주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이다.

우리는 끊임없이 우리 자신을 감추려 하니까 하나님은 말씀을 통해 우리 자신이 누구인가를 드러나게 하신다.
때로 우리 자신이 발견되는 그 순간이 아프지만 그 드러남의 과정을 통해 우리는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한 진정한 해방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 나로부터 벗어나는 ‘아!’하는 깨달음은 욕망에 빠져있는 나로부터 벗어나서 하나님께로 좀 더 가까이 가는 경험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것이 성경읽기가 우리에게 주는 중요한 효과이다.

결론
우리는 어떻게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말씀을 읽고 있는가?
매일 부모님의 뜻을 알 듯 성경을 통해 하나님의 마음을 알고, 하나님의 생각을 알아 매일의 삶에 성숙한 분별력을 가지고 살아가는 성도들이 되자.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를 깨닫게 한다.
날마다 주시는 말씀을 통해 우리의 연약함을 하나님께 고백함으로 참된 자유와 해방을 누리며 살아가는 행복한 성도들이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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